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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여행] 단궁왕검과 우리나라 개국 8시조왕을 모신 밀양의 천진궁

들꽃(野花) 2013. 12. 4. 11:34

[밀양여행] 단궁왕검과 우리나라 개국 8시조왕을 모신 밀양의 천진궁

 

밀양 천진궁

우리나라 3대 누각중 하나인 영남루에 오르면 영남루 북쪽 맞은편 느티나무 너머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무엇인지하는 궁금증이 생겨 들여다본다.

삼문으로 이루어진 출입문의 현판엔 만덕문이란 편액이 걸려있고 그 문을 들어서면 천진궁이란 현판을 달고 있는 3칸짜리 건물이 보인다.

단궁왕검과 우리나라의 8대 개국 시조왕을 모신 천진궁이다.

 

 

 

천진궁(天眞宮)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진궁은 우리나라의 3대 누각중 하나인 영남루 경내의 북쪽에 있는 건물로 원래 이곳은 요선관이 있던 자리이다. 효종 3년(1652)에 지었으며 공진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영조 15년(1739)에 불탄 것을 영조 25년(1749)에 다시 지었으며, 헌종 10년(1844)에 크게 수리하였다. 1952년 단군봉안회가 생기면서 대덕전이라 하였으나 1957년에 천진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7호 천진궁

 

 

 

느티나무를 좌우로 거느리고 있는 천진궁

 

 

단궁왕검의 영정과 8개국 시조의 위패를 모신 천진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만덕문

 

 

만덕문의 현판은 근헌 박창화의 글씨이다.

 

 

천진궁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1층이고,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목조로 된 기와집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기단은 낮은 2기단으로 앞면에만 문이 있고, 나머지 3면은 벽으로 되어있다.

 

원래 건물은 역대 8왕조의 개국 시조의 위패를 모신 공진관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한때 객사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헌병대가 감옥으로 사용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고 한다.

 

광복후 1952년 밀양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은 단군봉안회가 생기면서 단군 및 8왕조의 개국시조왕의 위패를 모시면서 대덕전이라 하였다.

년 음력 3월 15일 어천대제, 10월 3일 개천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천진궁의 현판은 개천 4414년(1957) 9월에 배수환씨가 쓴 글씨이다.

 

천진궁이란 이름은 '참 하느님을 모시는 곳'이란 뜻으로 단군으로부터 이 땅에 왕국을 열었던 8국의 개국 시조들의 위패를 모신 장소이다.

 

 

천진궁 내부 중앙에 봉안된 단군왕검의 영정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기록은 

중국의 《위서(魏書)》와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승려 일연(一然)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기이편(紀異篇)>에 실려 있고, 같은 고려시대의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記)》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권람(權擥)의 《응제시주(應製詩註)》에도 《삼국유사》와 비슷한 내용이 있다. 그러나 단군이나 고조선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에는 우선 최초의 기록인 《삼국유사》를 사료(史料)로서 인용하고 여기에 더 많은 신빙성을 둔다. 

삼국유사의 내용은 간단하지만 많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환인(桓因)의 서자(장남이 아닌 아들을 지칭) 환웅(桓雄)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므로, 아버지가 환웅의 뜻을 헤아려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神壇樹)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 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렀다. 곰과 범은 이것을 먹고 근신하기 3.7(21일)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못참아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어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축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혼인하여서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壇君王儉)이다. 왕검이 당고(唐高: 중국의 가장 오랜 역사 고전인 상서에 나오는 성군인 三皇五帝 가운데 堯 임금을 말함) 즉위 50년인 경인(庚寅: 당고의 즉위년은 戊辰이며, 즉위 후 50년은 丁巳이고 경인이 아니니 틀린 듯하다)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이어서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阿斯達)로 옮긴 뒤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하였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나라 호왕(虎王 - 武王을 말함)이 즉위한 기묘년(己卯年)에 기자(箕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한 후 단군은 장당경(藏唐京: 황해도 신천군 文化面)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두산백과 참조)

 

 

동쪽 벽에는 부여, 고구려, 가야, 고려의 개국 시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서쪽 벽에는 신라, 백제, 발해, 조선의 시조 들의 위패가 있다.

 

 

 

 

 

천진궁 내부에 있는 천부경과 홍익인간 이화세계

 

 

단군과 우리나라 8왕조의 개국시조들의 위패를 모신 천진궁

대한민국의 시조 단군을 기리는 '어천대제'와 '개천대제'를 알아본다.

10월 3일에 봉행되는 '개천대제'는 단군할어버님이 처음으로 세상을 여신 날이고, 음력 3월 15일에 봉행되는 '어천대제'는 단군할아버님이 신이되어 하늘로 올라가신 날이다.

 

 

 

주변볼거리

영남루, 아랑각, 무봉사

 

찾아가는 곳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