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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여행] 갑신정변의 삼일천하로 끝난 김옥균의 묘, 김옥균선생 유허 - 충청남도 기념물 제13-1호

들꽃(野花) 2015. 3. 28. 22:50

[아산여행] 갑신정변의 삼일천하로 끝난 김옥균의 묘, 김옥균선생 유허 - 충청남도 기념물 제13-1호

 

김옥균선생 유허 - 충청남도 기념물 제13-1호

 

조선의 개국에 앞장서서 갑신개혁을 일으켰던 한말의 풍운아 김옥균의 묘이다.

김옥균의 철종 2년(1851) 충남 공주군 정안면 광정리에서 태어났으며 7세에 당숙 김병기의 양자로 입양되어 한성에서 자랐다.  양아버지 김병기를 따라 강릉에서 율곡학파의 서당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1872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벼슬에 나갔다.

1881년 이후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의 문물을 시찰하고 돌아왔으며 1882년 임오군란이후 호조참판 등의 역임하며 개화파의 확산에 힘썼다. 

1884년 양력 12월 4일(음력 10월 17일) 우정국 준공 축하연을 계기로 갑신정변을 단행하여 수구파를 처단하고 신정부를 수립하였으나 청군의 무력공격으로 갑신정변은 실패했다. 김옥균 등 개화당의 집권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끝나자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 9명의 동지들과 일본으로 망명하였으며 그뒤 1894년 3월 청국으로 다시 망명하였다. 그러나 민비 수구파가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상해 동화양행 객실에서 암살당했으며 그들은 김옥균의 시체를 서울 양화진에 실어다가 능지처참하였다.

4개월뒤에 갑오개혁으로 개화파 정부가 수립되자 김홍집의 상소에 의해 죄가 사면, 복권되었다. 그뒤 1910년 규장각대제학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달이며 저서로는 『기화근사』, 『갑신일록』 등이 있다.

 

김옥균의 묘는 일본 동경 청산외인 묘지에서 1914년 9월 11일 의발을 이장, 정경부인 유씨와 합장한 것이다.

 

 

 

 

 

 

 

 

 

 

 

 

 

찾아가는 곳

김옥균선생 유허 - 충청남도 기념물 제13-1호

주소 : 충청남도 아산군 영인면 아산리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