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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여행] 일제 수탈의 기지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 근대역사관

들꽃(野花) 2015. 4. 26. 00:13

[목포여행] 일제 수탈의 기지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 근대역사관

 

목포의 근대화를 찾아볼 수 있는 곳, 목포 근대역사관

목포 근대역사관은 목포의 근대역사를 한분에 볼 수 있는 곳으로 과거 일제 수탈의 기지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목포지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조선의 토지를 근대적으로 측량한다는 명목 하에 토지를 탈취해간 곳으로 일제 수탈의 기지라 할 수 있는 회사로 일제강점기에 전국 9개의 지점이 있었는데 당시의 건물 중 목포의 건물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건물 내부를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역사적 현장이 잘 보존되어 목포의 근대역사에 관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건물에는 목포의 개항을 시작으로 된 목포의 근대 역사에 관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당시에 사용하던 금고도 건물 내부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글이나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 교육으로 사용하고 있다. 해방후에는 경찰서로도 사용되면서 금고가 유치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다고 한다.

 

동양척식주식회사란 우리나의 토지와 농산물 등 경제 수탈을 위해 세운 일본의 국책회사이자 착취기간으로 여기서 척식(拓殖)이란 '식민지 개척'을 말한다.

일본은 1908년 서울(경성)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본점을 세우고 부산·목포·이리·대전·대구·원산·평양·사리원 등 전국 주요 농업지역과 교통요지에 지점을 설치했다.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 지점 - 전라남도 기념물 제174호

 

 

 

2015년 4월 11일의 목포근대역사관(구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전경

당시 전국에 9개의 건물 중 부산과 목포 지점 건물이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창립당시에는 한일양국의 이중국적의 회사로 1908년에 설립한 특수 국책회사였으나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면서 일본국적의 회사가 되었다. 설립목적은 토지매수가 주였으며 사들인 토지는 다시 한국인에게 높은 소작료를 받고 임대를 하였다.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은 당초 1909년 나주 영산포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목포가 개항지로 급격히 성장하자 지점을 목포로 옮겨오면서 1921년 11월 7일에 건축한 르네상스식 2층 건물이다. 건물 외벽과 내벽 곳곳에 일본을 상징하는 해·벚꽃 따위 무늬들이 새겨진 대리석 건물이다.

광복 뒤 3~4년간 해군부대가 주둔했고, 1989년까지 해군 헌병대가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의 공공시설물로는 목포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목포지점은 전남 각지에 있던 17곳의 농장을 관리하고 있으며 전국의 지점 중에서 가장 많은 소작료를 거둬들이던 곳이었다. 토지경영뿐만아니라 부동산 담보 대부를 통해 조선 농민을 수탈하는 금융기관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2006년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개관

 

 

 

 

 

 

건물로 들어서면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지점위치와 당시의 건물이 소개되어 있다.

 

 

 

오른쪽으로 이어진 통로 벽면에 사진들을 볼 수 있는데 목포의 옛 모습, 1897년 목포 개항에서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기간동안의 목포항 전경과 유달산 주변의 모습이 걸려있다.

 

 

 

목포대(만호진)에서 본 목포

 

 

 

 

 

개항후 4년째의 목포

 

 

 

개항후 35년의 목포

30여년이 지난 1936년, 목포항 주변의 변화된 모습과 영정(영해동)과 송도(동명동)의 시가지 형성을 볼 수 있다.

 

 

 

 

매일 수 십척의 발동기선이 입출항하는 영정(영해동) 잔교와 그 부근

 

 

 

1909년에 준공된 구 제일여고 옆 수원지에서 반호진 방면의 전경

 

 

 

건물은 오른쪽부터 경찰관파출소(항동), 세관검사소, 상선회사 대리점(현재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곳)

 

 

 

옛날의 오포

1909년 4월 경기도 양주산성에서 가져온 조선제 선입포로 정오를 알리는 신호로 사용했다.

폭음이 약해 1913년 일본 대판 포병공장의 야포로 대체했다. 그 후 일제 말기 태평양전쟁을 위해 일본은 두 대포를 거두어 가 버렸고, 현재 유달산에 있는 오포는 1987년 10월 현충사 박물관에 전시된 전자총통을 복제하여 다시 설치한 것이다.

 

 

 

일본영사관(사적 제289호)

 

 

 

좌로부터 1925년 유달산 정상의 일등바위(1920년말 일인들이 조각한 부동명왕상과 유달산신 홍법대사상이 보인다.), 송도신사(1910년 조영, 1919년 배전신축(현 동명동 언덕에 위치), 일제는 송도(동성)에 공원을 조성하고 신사를 지어 조선인에게 참배를 강요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유달산 八十八 소영장, 홍법대사가 시고꾸에서 수행했다는 88개소를 모방해서 돌부처를 설치했다.

 

 

 

 

목화의 고장, 목포

1904년 고하도에서 육지면 재배를 처름 시작하였음을 기념하기 위해 1936년 면화재배 30년 기념사업회에서 건립, 원형은 고하도 이충무공 비각 옆에 있다.

일찍부터 목포는 1흑 3백의 고장으로 불리었는데 1흑은 해태, 3백은 쌀·소금·면화를 가리키는 말이며, 목포라는 지명이 목화가 많이 난다하여 그렇게 불렀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목화의 주된 생산지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사용했던 금고

 

 

 

순종황제 일본방문(1917)

순종황제가 어딘가 불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순종의 군복은 한국 왕족의 권위를 격하시킬 목적으로 일본이 착용케 한 것이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중풍한자처럼 움켜지고 눈은 사시처럼 보고 있도록 의도적으로 기록하여 소개한 장면이다.

 

 

 

 

당시의 태극기

 

 

 

 

 

목포의 동해 전경

한국의 6대 항구도시이며 이곳에서 생산된 미곡은 70% 일본에 수탈당했다.

 

 

 

벌거벗은 유달산

 

 

 

관람안내

개관시간 : 오전 9시 ~ 18시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찾아가는 곳

목포근대역사관(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전남 목포시 번화로 18(중앙로 2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