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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여행] 목포의 개항에 의해 세워진 구 목포일본영사관,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태어나다.

들꽃(野花) 2015. 4. 22. 06:51

[목포여행] 목포의 개항에 의해 세워진 구 목포일본영사관,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태어나다.

 

구 목포일본영사관

조선을 집권하고 있던 흥선대원군의 대외교 정책은 쇄국정책을 펴며 서양과의 통상을 거부하고 있었으며, 며느리인 명성황후는 통상을 원하고 있던 조선,  흥선대원과 명성황후와의  세력싸움을 하고 있던 시절 일본은 조선에 대한 통상요구를 하게 된다. 조선이 거부하자 일본은 일본 군함 윤요호를 보내 불법침입으로 조선을 공격한다. 나쁜 놈들이 지들이 전쟁을 일으켜 놓고  책임을 물어 전권대사를 파견하여 통상을 요구하며 무력시위를 하며 통상요구를 하게 된다.  마침 조선에서는 명성황후가 세력을 잡고 있어서 명성황후는 일본의 통상요구를 들어준다. 이에 맺은 조약이 강화도조약이다.

강화도조약은 우리나라 최초로 맺은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이다. 강화도조약에서는 일본의 치외법권 인정, 해안 측량권 인정 등 조선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약이다.

 

강화도조약

제4관 : 조선국 부산 초량진에는 일본 공관이 있어서 오랫동안 양국 인민의 통상 구역이 되어 있다. 이제 마땅히 종전의 관례와 세견선 등의 일을 혁파하고 새로 만든 조약에 의거하여 무역 사무를 처리하도록 한다. 또한 조선국 정부는 따로 제5관에 기재된 2개 항구를 열어 일본국 인민의 왕래 통상함을 들어주어야 한다. 이곳에 대지를 임차하고 가옥을 지으며, 혹 이곳에 거주하는 조선 인민의 가옥을 임차함에 있어서도 각기 그 편의에 맡긴다.

제5관  : 경기, 충청, 전라, 경상, 함경 5도의 연해 중 통상에 편리한 항구 2개처를 택하여 20개월 이내에 개항한다.(이때 개항된 항구가 재물포와 원산이다.)

나라에 힘이 없으니 이런 불평등 조약을 맺지

어여 합심하여 나라의 힘을 기릅시다.

 

1876년(고종 13년) 2월 27일 조선과 일본간에 체결된 조일수호조규이나 강화도조약으로 널리 알려진 조약이다.

강화도조약으로 인해 1879년 10월 1일 목포항이 개항이 되고, 1897년 10월 26일에는 목포 일본영사관이 설치되었다.

 

 

 

구 목포일본영사관

건물은 1900년 1월에 착공하여 같은 해 12월에 완공한 것으로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띄고 있다.

이후 건물은 목포이사청, 목포부청, 목포시청, 목포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개장했다.

 

 

 

붉은 벽돌의 건물이 눈에 띠고 있다. 바로 사적 제289호로 지정된 구 목포일본영사관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을 때려부순 이순신장군의 이야기가 전하는 노적봉이 건물 좌측에 살며시 보인다.

지들이 아무리 머리를 써도 이순신장군이 지들 머리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지들이 질 수 밖에.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지은 좌우대칭 사각형 모양의 건물로 중앙에 있는 현관이 앞으로 뛰어나와 있다.

 

 

 

1층과 2층 사이에는 벽돌의 허리 돌림띠를 두었으며, 창문 왼쪽과 오른쪽에 흰색벽돌을 반듯하게 장식하였다.

건물내부에는 실내의  천장장식, 벽난로, 거울 등은 건축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몇번을 왔지만 그때마다 건물 외관만 보고 갔었는데 2014년 3월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개장하여 우리 후손들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새롭게 단장하였다.

 

 

 

붉은 벽돌을 자세히 보면 움푹 파인곳이 몇군데 보인다.

이는 한국전쟁당시 북한군의 총탄자국이라고 한다.

아무데나 총질을 해대고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목포시는 시비를 들여 2년간에 걸쳐 전시관, 방공호, 수장고 시설에 대한 전시 설계 및 전시물 설치공사를 하고 1890년대 개항기 목포에서 1950년대 근대 목포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문화, 항일운동에 관한 전시와 유물 등을 선보이게끔 만들었다.

 

 

 

 

 

 

 

 

 

 

 

 

구 목포부청 서고

이 건물은 구 목포 일본영사관 부지 내 좌측 후면 모퉁이에 있는 건물로 건립시기는 목포부청이 개청(1910.10.1)된 이후이며 용도는 부청의 서고로 지어진 것이다.

붉은 벽돌집인 본관과 대비되는 건물로 건립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석재 가공 및 쌓기 등도 우수하며 창고를 석조로 하는 경우는 근대기 일본의 영향이다. 건축 외형의 돌 표면은 흑두기로 되어 있으며 전면 양측 모서리만은 둥글게 잔다듬으로 처리하였다.

 

 

 

계단위는 일본의 신사가 있던 자리고 왼쪽의 철문안은 방공호로 만들어진 곳이다.

 

 

 

일제강점기말 미군의 공습과 상륙을 대비하기위해 한국인을 강제 동원해 만들어 놓은 방공호다.

내부 전체길이는 82m이며, 높이는 2m 폭은 넓은 곳이 3.3m 정도이며 출입구는 3개다.

 

 

 

일본놈들의 총칼앞에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우리네 선조들

맘이 찡하다.

 

 

 

 

 

 

 

철문이 굳게 닫겨진 곳

옛 봉안전터로 일제 강점기에 창시개명을 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시절, 관공사, 학교 등에 일본놈의 왕이라고 지껄이는 놈의 사진, 입으로 지껄이면 모두 어록이 되는 것 등을 모셔놓고 신사참배를 하지 못할 때 대신 참배하도록 했던 곳이다.

 

어찌 되었던 가슴 아픈 우리네 역사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다시는 그런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하는  것 또한 우리들 몫이 아닌가한다.

 

 

찾아가는 곳

구 목포일본영사관

사적 제289호

주소 : 전남 목포시 대의동 2가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