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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여행] 최치원이 세상이 어지러울 때 근심과 걱정을 달랬던 자천대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6호

들꽃(野花) 2015. 4. 27. 21:08

[군산여행] 최치원이 세상이 어지러울 때 근심과 걱정을 달랬던 자천대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6호

 

군산 옥구향교 한편에 홀로이 서 있는 자천대

자천대는 통일 신라 말기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이 당에서 돌아왔을 때 세상의 인심이 어지럽고 어수선하자 이곳에 올라 책을 읽으며 근심과 걱정을 달랬다고 한다.

원래 옥구군 선연리의 동산에 있었으나, 일제시대 후기 군용비행장 안으로 편입되자 이를 상평마을로 옮기고 경현재라 하였다가 1967년 다시 지은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치원은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대문장가로 857년에 태어났으나 언제 죽었는지 기록이 없다. 본관은 경주, 자는 고운, 해운이다. 경주 사량부 출신으로 견일의 아들이다. 12세인 868년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의 나이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토황소격문'으로 문장가로서 이름을 높였다. 29세가 되던 885년에 귀국할 때까지 17년 동안 당나라에 머물러 있는 동안 당나라의 여러 문인들과 사귀어 그의 글재주는 더욱 빛나게 되었다.

894년에는 시무책 10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려 문란한 정치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최치원은 글씨도 잘 써서 오늘날 남아있는 것으로는 쌍계사의 '진검선사비문'이 유명하다.  저술로는 계원필경이 있고, 동문선에 시문 약간이 전한다.

1023년에 문창후에 추봉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 태인 무성서원, 경주 서악서원, 함양 백연서원, 영평 고운영당 등에 제향되었다.

 

 

 

최치원이 근심과 걱정을 달랬던 자천대

 

 

 

건물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의 2층 누각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신하여 만든 공포는 여러가지 색으로 된 무늬를 곱게 칠해 놓았다.

 

 

 

 

 

 

자천대는 옥구향교내에 있으며 옥구향교는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옥구향교의 특색은 단군에게 제사지내는 단군묘와 최치원의 영정을 모신 문창서원, 세종대왕 숭모비과 비각이 같이 있다는 점이다.

 

찾아가는 곳

자천대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6호

주소 : 전북 군산시 옥구읍 광월길 33-50(상평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