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여행

[군산여행/새만금여행] 고려말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의 현장, 진포해양테마공원

들꽃(野花) 2015. 5. 21. 15:15

[군산여행/새만금여행] 고려말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의 현장, 진포해양테마공원

 

진포대첩, 진포해양테마공원

전라북도 군산시와 부안군을 잇는 끝없는 새만금 방조제, 방조제의 길이가 무려 33.9km로 세계기네스북에 등재되었을 정도로 길다.

비응항에서 출발하여 차로 달려도 한참을 달려야 그 끝을 볼 수 있는 새만금 방조제

오늘 나그네는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보기 위해 군산의 근대화거리에서 그 시작을 하려한다.

서울에서 출발한 나그네는 고속도로에 주말 나들이를 나온 차량들이 많아 예정보다 다소 늦은 시간에 들려 먼저 점심을 먹고 진포해양테마공원을 찾았다. 작년에 군산을 둘러보았을 때 군산 근대화거리의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근대미술관, 근대건축관, 군산세관 등을 둘러보았으나 시간상 진포해양테마공원을 둘러보지 못해 못내 아쉬웠는데 오늘은 제일 먼저 진포해양테마공원을 찾았다.

 

진포테마공원

진포테마공원의 자리는 고려말 왜구의 침입을 격퇴한 진포대첩이 있었던 곳으로 진포는 군산의 옛 이름이다.

진포대첩은 1380년 고려가 망하기 12년전 8월에 일본놈들의 해적집단인 왜구가 500여척에 이르는 대선단으로 남해안을 비롯하여 서해안을 힙쓸고 다니다가 진포에 침입하여 야만적인 약탈을 자행할 때 이를 물리친 전쟁이다.

 

진포대첩이 일어났던 군산항의 진포해양테마공원은 관광을 온 사람들만이 오고가는 한적하니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포해양테마공원에 정박해 있는 해군 상륙한(LST) 위봉함 676호

 

 

 

군산시 내항 뜬다리(부잔교)

뜬다리는 밀물 때 수면에 떠오르고 썰물 때 수면 만큼 내려가는 수위에 따라 다리의 높이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선박의 접안시설물이다.

1899년 군산항 개항이후 3천톤급 배 4척을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4기 다리로써 하루 1백 50량 화차를 이용하여 호남평야의 쌀들을 이 다리로 일본에 반출하였다. 당초 4기가 건설되었으나 현재 3기만 남아있다.

 

군산은 어디를 가든 일본의 잔재들이 남아있어 쓸쓸한 생각이 든다. 나라 잃은 설움을 어찌 말로다 표현하리오. 더구다나 직접 격지 않고 사진이나 교과서에서 만나는 그 옛날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나마 이렇게 그 잔재들이 남아있어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뜬다리, 부잔교

 

 

 

당시 왜구의 만행이 얼마나 심했는지 각종 자료들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니 아픈맘이 든다.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는 당시의 상황은 왜구의 만행으로 죽은 우리 백성들의 시체가 산과 들을 뒤덮었고, 또한 약탈한 곡식을 나르면서 흘린 쌀이 한 자도 넘게 땅을 덮었다고 한다.

 

고려 정부는 왜구를 진압하기 위해 도원수 심덕부, 상원수 나세장군, 부원수 최무선 장군 등을 파견하였고, 고려군은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로써 공격하여 왜선 500척 모두를 불태웠다.

 

진포대첩은 세계 해전사에 함선에서 화포를 사용한 최초의 전투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해상전투로서 해전에 있어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군산 내항의 진포해양테마공원은 고려말 최무선 장군이 최초로 화포를 이용하여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을 기념하여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들의 체험학습의 장으로 활용, 올바른 역사의식 확립과 자긍심 고취를 위해 당시 전투현장이었던 내항일대에 육·해·공군의 퇴역장비 13종 16대를 전시하여 공원을 조성한 곳이다.

 

진포해양테마공원

사업은 2007년 10월 ~ 2010년 8월까지 조성되었으며 총면적 16,300㎡으로

 해군 2대 : LST, 상륙장갑차

 육군 6대 : M-548 2대, M-48 2대, 자주포 2대

 공군 7대 : F-86, UH-1B, O-2A, F-5F, C-123K, F-4D, T-41B,

 해양경비전 : 마니산 273함

등이 전시되어 있다.

 

 

 

 

 

8인찌 자주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M4 전차를 변형하여 8인치 곡사포를 탑재한 포병용 화포로 미국에서 1957년에 개발, 월남전에서 최초 사용하였으며 우리군은 1966년 육군에 자주포대대를 창설하면서 미군으로부터 인수받아 운용하였다.

 

 

 

 

M-48A2C

1958년 생산되었으며 1971년 주한미군 제7보병사단이 철수하며서 1972년 우리군에 인도되어 2007년말 일선에서 퇴역하기까지 한국군의 주력 전차중 하나로 운용되었다.

 - 중량 44.6t, 최대속도 48km/h, 최대사거리 18km, 승무원 4명, 무장 탑재탄약 64발, 주포 90mm

 

 

 

 

 

F-4D

대한민국 공군이 1969년 미공군으로부터 인도받은 다목적 전투 폭격기로서 3시간 이상의 장기 체공능력과 4개의 무장 장착대, 동체 양옆에 터보제트 엔진으로 우수한 기동력을 갖춘 장비이다.

 - 최대속도 마하 2.3, 항속거리 2000km, 대공미사일 8기

 

 

 

C-123K

1973년 우리공군에 도입되어 주로 대간첩작전, 병력 및 보급품 수송, 수재민 및 조난어선구조, 탐색구조활동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

 - 최대속도 454km/h, 항속거리 4,828km, 승무원 3명, 수송능력 60명, 화물 6,800kg

 

 

 

 

C-123K 내부

 

 

 

 

 

위봉함 676호

함정은 1945년 1월 16일 미국에서 LST849함으로 건조되어 14년간 해군의 주력함정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상륙작전 등에 참전한 군함이다.

1959년 1월 13일 미국 시애틀에서 인수받아 1959년 5월 19일 진해항에 입항, LST 676호 위봉함으로 명명된 후 대한민국의 주력 상륙함으로써 상륙작전과 수송작업을 수행하였고, 1965년부터는 월남전에 백구부대 일원으로 16회의 전투작전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린바 있으며 이외에도 48년간 전투활동을 물론 해군사관 생도와 해군 장병들의 훈련 및 실습활동 지원을 통하여 국토방위와 세계평화 수호 등 대한민국 해군의 중추적인 역활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2006년 12월 31일 퇴역한 함정이다.

 

군산시에서는 안보교육 학습장과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해군과 무상대여 협약을 체결하고 본 함정을 2007년 12월 25일 이곳에 옮겨 놓았다.

 

 

 

 

위봉함의 관람시간은

  화요일 ~ 금요일 09:00 ~ 17:30

  공휴일 09:00 ~ 17:00

  월요일 휴관

 

 

위봉함에는

 - 최무선과 화포이야기

 - 승리의 진포대첩

 - 세계의 명 해전

 - 진포대첩 역사속으로 : 3D 영상실 10분 내외 상영(5분 간격으로 재생)

 - 병영생활 체험장, 전쟁유물 전시장

 - 군사역사 사진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무선이 화포를 발명하였을 때의 당시 상황은 14세기 무렵 왜구의 노략질로 많은 피해를 입고 있던 고려는 화약을 중국에서 수입할 수 밖에 없었기에 화약의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최무선(1325 ~ 1395)은 어려서부터 화약개발에 관심을 두었으며 최무선은 중국인 이원으로부터 염초 제작기술을 익히게 되었고, 많은 실험끝에 화약을 만들게 되었다. 고려는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화약무기의 대량 생산 및 화포를 싣고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전함을 건조하였다.

그 결과 1380년 왜구가 진포에 침입해오자 화약무기를 사용하여 500여척의 왜선을 격파하였으며 1383년 남해 관음포에서도 화약무기, 화포를 이용하여 왜구를 물리쳤다.

최무선은 우리나라 화약제조의 시작하였으며, 해전의 개념을 바꾼 함섬을 만들었고 주화를 만들어 전쟁에 사용하였다.

고려시대의 최무선이 만든 주화(走火)는 한자 그대로 '달리는 불'이라는 뜻을 가진 로켓의 일종으로 화살에 붙어있는 화약통에 불을 붙이면 자체 추진력으로 날아간다. 이후 주화는 조선시대에 신기전으로 발전하여 화차를 통해서 대량발사가 가능해졌다.

 

 

 

 

황자총통

 

 

 

진포해전

 

 

 

진포대첩 이야기

진포대첩은 세계 해전사에서 처음으로 선박에 화포를 설치해서 정박중인 적선을 격파하고 바다에서 함포로 적선을 격침시키는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유럽에서 최초로 화포를 사용한 해전은 1571년 신성동맹(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함대가 오스만투르크 함대를 격파한 레판토 해전이다. 이는 1380년의 진포대첩보다 190년이나 늦은 시기이다.

 

 

진포대첩은

선박에 화포를 설치한 최무선의 함선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열 배에 가까운 500여척의 왜구배를 전소시켰다. 왜구와의 싸움중에서도 가장 큰 승리였고 이후에 왜구의 침입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고려사에 ' 화포를 사용해 적선을 소각했는데 연기와 불길이 하늘을 덮었고, 배를 지키던 적병들은 거의 타 죽었으며, 바다에 뛰어들어 죽은 자도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들끓는 왜구의 침입 1322년 ~

삼국시대부터 있어 온 왜구의 침입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서는 매우 심해졌다. 공민왕 때는 14년간 무려 378회나 침략해와 강화도가 약탈당하고 개경까지 위협을 당했다.

 

 

 

홍산대첩 1376년

1376년에 최영장군이 홍산에서 왜구를 크게 격퇴한 싸움이다. 왜구는 금강을 거슬러 올라와 부여와 공주를 함락하고 개태사를 약탈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최영장군은 병력을 이끌고 출전하여 홍산에서 왜구를 격파했다.

 

 

 

 

진포대첩 1380년

 

 

 

황산대첩 1380년

진포해전에서 배가 모두 불타 퇴각할 수 없었던 왜구는 내륙으로 숨어들어 약탈을 자행했다. 이에 고려 조정은 이성계를 경상도 순찰사로 임명한 후 이 지역을 왜구로부터 방어토록 했다. 왜구들은 산을 의지하여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전투를 벌여 한때 고려군은 고전하였으나 이성계는 밀리지 않고 휘하 장병들을 독려하여 승리하게 되었다.

 

 

 

 

관음포해전 1383년

진포와 황산에서 대패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1383년, 왜구는 120척의 군선을 이끌고 침입해왔다. 이에 고려 조정은 해도원수 정지에게 출전토록 했다. 정지는 급히 출전하여 관음포에서 왜선과 전투를 벌여 그 중 17척을 화포 공격으로 격파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이 해전은 움직이고 있는 적선에 화포를 정확하게 적중시킨 진정한 해전이었다.

 

 

 

대마도(쓰시마)정벌 1389년

토지가 좁고 척박한 대마도는 식량을 왜부에서 구해야 했기 때문에 가뭄과 기근이 심해지면 대마도의 왜구들은 우리나라 해안으로 침입하였다. 화약무기로 무장해 왜구와의 전투에서 우세를 보인 고려는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에 대한 정벌을 단행했다. 경상도 부사 박위가 100척의 전함을 이끌고 대마도를 공격해 왜선 300여 척과 소굴을 불태웠다. 이후 왜구의 침략은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다.

 

 

 

 

 

 

 

 

 

 

 

 

 

2층은 병영생활체험장 위주로 꾸며져 있으며 한국전쟁사진전을 비롯한 각종 전쟁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전쟁에 대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위봉함에서의 구경을 끝내고 근대문화거리를 둘러보면 더 좋은 여행코스가 될 것 같다.

 

 

 

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장미공연장

 

 

 

근대미술관(구 일본18은행 군산지점)

 

 

 

 

장미갤러리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구) 군산세관

 

 

 

 

근대문화거리에는 근대역사박물관, 군산세관, 근대건축관, 진포해양테마공원, 미즈카페, 장미갤러리, 장미공연장 등을 보면서 군산의 근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찾아가는 곳

진포해양테마공원

전라북도 군산시 내항2길 32 진포해양테마공원

전화번호 : 063 - 445 - 4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