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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여행] 포은 정몽주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는 사액서원인 용인 충렬서원

들꽃(野花) 2015. 6. 12. 17:04

[용인여행] 포은 정몽주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는 사액서원인 용인 충렬서원

 

용인 충렬서원

용인시에 있는 충렬서원은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서원으로 인근에 정몽주선생의 묘소도 있어 함께 연관지어 둘러보면서 정몽주선생에 대해 알아보면 좋을 것 같다.

충렬서원은 조선 선조 9년(1576)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1592년)으로 불타 없어져 선조 9년(1605)에 다시 지었다.  광해군 원년에 임금이 이름을 짓고 현판을 하사하는 사액을 받아 나라의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선현들의 배향과 유학교육을 담당하였으나 고종 8년(1871)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을 없어졌으나 1924년에 복원하였다.

 

충렬서원은 1972년 5월 4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서원이다.

 

 

 

포은 정몽주선생을 모신 충렬서원은 남서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강당을 앞쪽에 배치하고 사당을 뒤에 배치하는 전학후묘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충렬서원은 정몽주선생과 조광조선생의 묘소 중간지역인 죽전동에 있었으며 서원이름도 죽전서원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서원이 불타없어지자 1605년(선조 38년) 당시 경기도 관찰사였던 이정구가 정몽주선생의 후손인 현감 정종선, 그리고 이시윤 등과 함께 묘소 아래 중건하였다.

 

 

 

서원에 있는 홍살문은 그냥 지나쳐 와 아쉬움이 남았다.

서원의 배치는 홍살문과 외삼문 내삼문 사당이 거의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강당이 축에서 약간 벗어나 사당과 같은 축에 배치하고 있다.

 

 

 

강당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내삼문

 

 

 

포은 정몽주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

 

포은 정몽주선생의 고려말 삼은의 한 사람이며, 우리나라의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사람으로  공민왕 9년(1360)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예문관검열, 예부정랑, 대사성 등의 여러 벼슬에 올랐다. 5부 학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했으며, 일본에 가서 외교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성계의 세력이 날로 커지면서 정도전 등이 새 왕조를 세우려 하자 끝까지 고려 왕실을 지키려다가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

 

 

 

 

 

서원은 장격각이나 교직사 등 부속건물이 없이 사당과 강당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18세기 이후에 서원이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 기능 중심의 시설로 바뀌어 갔음을 알려주고 있다.

 

 

 

 

 

교육적 기능을 담당했던 강당도 18세기 이후에는 교육보다는 제향 때 모임장소로 쓰였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곡로 45에 있는 정몽주선생의 묘소

선생의 묘소는 경기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찾아가는 곳

 

용인 충렬서원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118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