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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여행] 진악산 남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절, 보석사

들꽃(野花) 2015. 10. 5. 10:50

[금산여행] 진악산 남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절, 보석사

 

 

금산의 보석사

현재의 도량은 작은 편이지만 보석사는 일주문을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전나무 숲길과 다양한 문화재를 만날 수 있는 절이다.

특히 전나무 숲길은 연인들이 데이트하기 좋고, 한적하니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좋은 길이다.

보석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로 한 때는 강원이 있어서 많은 학승이 배출되었으며 31본산 중 하나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보석사라는 절 이름을 가지게 된 연유는 조구스님이 창건 당시 절 앞산의 금광에서 채굴된 금으로

불상을 조성하였다하여 절 이름을 보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 보석사에는 1990년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된 은행나무와 유형문화재 제143호로 지정된 대웅전, 문화재자료 제29호인 의선각을 비롯하여 등운선원, 기허당, 산신각, 범종루, 일주문, 요사채, 주지실 등이 있다.

 

 

 

 

 

전나무 숲길이 아름다운 절, 보석사

 

 

 

금산의 아름다운 산

진악산의 남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보석사

 

'진악산보석사'란 편액을 단 일주문을 지나 보석사로 들어간다.

보석사는 의병승장이었던 영규대사의 호국정신이 절 곳곳에 배여 있고,

절을 창건한 조구대사가 제자 6명과 함께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

6그루의 나무가 하나로 묶여서 아름드리의 한그루 은행나무로 성장하여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되었다.

 

 

 

 

 

일주문을 지나면 길 좌측에 비각을 만나게 된다.

 

 

의병승장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호)

임진왜란의 의병승장으로서 금산전투에서 중봉 조헌과 함께 순절한

기허당 영규대사의 순절사적비로 1840년 보석사 입구에 건립되었다.

비문을 지은이는 우의정 조인영이며,

금산군사 조취영이 글씨를 썼고, 비는 비각안에 있다.

비의 앞면에는 큰 글자라로 '의병승장(義兵僧將)'이 새겨져 있으나 자획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1940년 일본 경찰이 비각을 헐고 자획을 훼손하여 땅에 묻었던 것을 광복 후에 다시 세웠다.

 

의병승장비 오른쪽 뒤에 있는 비석들

비석 중 민태호에 대한 영세불망비(좌측 2번째)가 있는데 문화해설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조구대사가 창건한 절인 보석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던 것을

조선 고종 때인 1882년 민태호의 추천으로 명성왕후가 다시 세우고 원찰로 지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감사표시로 민태호에 대한 영세불망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의병승장비를 지나 보석사로 가는 길 좌우측에 있는 전나무 숲길을 걷는다.

 

 

 

9월이라 하지만 아직은 햇빛이 따갑지만

전나무 숲길에 들어서니니 시원한 기운이 온 몸으르 전해지는 듯하여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전나무 숲 길을 걷는다 싶으니 어느덧 넓은 공터가 나오고 공터 좌측에 하늘높이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가 반가이 맞아준다.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된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이다.

보석사를 창건한 조구대사가 6명의 제자와 심었는데 후에 한그루의 나무로 성장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이다.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000살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34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10.72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쪽이 24m, 남·북쪽이 20.7m이다.

 

이 나무는 마을에 큰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준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마을을 지키고 보호해주는 신성한 나무로 여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은행나무 노거수는 대개가 암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이 은행나무도 암나무이다.

조구대사가 보석사 창건(886년) 무렵 제자와 함께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1945년 광복 때와 1950년 전란 때, 1992년 극심한 가뭄 때 소리내어 울었다고 전해진다.

 

 

 

저 길 너머에 뭐가 있을까?

진악산으로 가는 길일까?

 

 

예전에는 이 다리를 건너 보석사 경내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문이 닫혀있는것 같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보석사 은행나무를 보고 다시 되돌아나와서 경내로 들어간다.

 

 

 

 

 

보석사 경내에는 대웅전과 기허당이 있으며 절의 제일 뒤쪽에는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대웅전 앞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승장이었던 영규대사가 머물며 정진했던 곳으로 알려진 의선각이 있다.

 

 

보석사 대웅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대웅전이란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을 말하며.

보석사 대웅전은 마당에서 10계단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다포계 양식의 맞배지붕이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불로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좌측에 있는 영규스님의 진영을 모셔놓은 기허당이다.

 

 

 

 

영규대사(좌측), 조구대사(우측)의 진영

 

 

 

산신각

 

 

 

 

산신각에서 바라본 보석사 경내

 

 

 

 

 

의선각(문화재자료 제29호)

임진왜란 당시 의병승장이었던 영규대가가 머물며 정진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영규대사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승병을 모집하고, 중봉 조헌선생의 의병과 함께 금산의 왜적을격퇴하였으며 700의사와 함께 1592년 8월 금산벌싸움에서 전사했다. 영규대사는 용맹과 담력이 출중했으며 싸움마다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의선각이라쓴 편액은 창년위 김병주가 썼다고 한다.

 

 

 

 

 

 

 

 

가을의 문턱에 찾아온 보석사

 

시원한 가을바람이 전나무 숲을 지나 나그네의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아 좋다.

 

 

 

 

찾아가는 곳

 

금산 보석사

충남 금산군 남이면 보석사1길 30(석동리 711)

전화번호 : 041-753-1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