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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여행] 고구려의 흔적을 찾아, 연천 호로고루(사적 제467호)

들꽃(野花) 2017. 6. 1. 15:01

[연천여행] 고구려의 흔적을 찾아, 연천 호로고루(사적 제467호)

 

사적 제467호 연천 호로고루

호로고루는 임진강 북안의 현무암 절벽위에 있는 고구려성으로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1257-1번지에 현재의 주소를 두고 있다.

 

호로고루(瓠蘆古壘)라는 명칭은

일대의 임진강을 삼국시대부터 호로하라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성의 둘레는 401m로 크지 않지만 특이하게도 남쪽과 북쪽은 현무암 절벽을 성벽으로 이용하고

평야로 이어지는 동쪽에만 너비 40m, 높이 10m, 길이 90m 정도의 성벽을 쌓아 삼각형 모양의 성을 만들었다.

 

한강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는 6세기 중엽 이후 7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년 동안

임진강을 남쪽 국경으로 삼았는데, 임진강 하류에서부터 상류쪽으로

덕진산성, 호로고루, 당포성, 무등리 보루 등 10여개의 고구려 성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그 중 호로고루는 고구려 평양성과 백제 한성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상에 있을뿐 아니라 말을 타고

직접 임진강을 건널 수 있는 길목을 지킬 수 있었으므로 고구려의 남쪽 국경방어성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5월의 보리가 한창인 때의 호로고루 성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현무암 절벽를 이용한 호로고루 성

 

 

 

연천 호로고루 홍보관 앞에 서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홍보관 앞에 서 있는 광개토대왕릉비는 2002년 북한에 소재한 국보급 고구려 유물 및 벽화고분을 북한에서

직접 모형으로 제작해 우리나라에 제공한 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의 결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민간의 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을 주도하며 이 비를 소장하고 있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2015년 연천군에 이 비를 무상으로 기증하였으며 연천군은 고구려의 기상을 되새기고

남과 북의 통일과 화합을 기원하는 뜻을 담아

남한 지역을 대표하는 고구려 유적인 연천 호로고루에 이 비를 세우게 되었다.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은 영토를 많이 넓힌 아버지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 동쪽(현 중국 지린성 지안현 퉁거우 지역)에 광개토대왕의 능과 비를 세웠다.

광개토대왕릉비는 불규칙한 직4각형 모양의 커다란 각력응회암의 4면에 44행 1,775장의 비문을 새긴 비로

높이는 6.39m이고, 너비와 폭은 1.35~2m이다.

비문의 내용은 앞머리에 건국시조인 주몽에서부터 광개토대왕까지 왕들의 계보와 업적이 적혀있고,

본문은 광개토대왕의 정복활동과 경계지역을 돌아본 일들이 적혀있으며 끝머리는 무덤을 지키는

묘지기들의 이름이 쓰여있다.

 

 

 

 

연천 호로고루 홍보관

관람시간 : 하절기(5~10월) 오전 10시 ~ 오후 6시

동절기(11월~4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휴관일 : 1월1일, 설날, 추석, 매주 월요일, 화요일(휴일일 때는 그 다음날)

 

 

 

 

 

 

서울~평양간 가장 빠른 길인 자비령로는

서울~양주~연천의 장단(호로하) ~ 개성~금천~평산~서흥~황주~평양을 연결하는 고대의 주요 도로이다.

 

서해에서 호로고루까지의 임진강은

수심이 깊어 배를 타지 않고는 건널 수 없지만 호로고루 앞은 임진강에 합류하는 작은 하천의

퇴적작용으로 수심이 낮은 여울목이 발달했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아 수심이

얕을 때는 걸어서도 건널 수 있다.

 

호로고루 주변의 임진강은 삼국시대부터 호로탄, 술탄, 호로하 등으로 불렸는데

호로고루는 호로하 근처에 있는 옛 성이라는 뜻이다.

간혹 성을 뜻하는 고구려 말인 '홀'에서 '호로'라는 지명이 유래한 것이라는 학설도 있고,

이곳의 임진강이 크게 굽이쳐 흐르는 모습이 표주박처럼 보인다 해서 조선시대에는

표로하 혹은 포로탄이라고 불렀는데, 표로하 근처의 성이라 하여

포로고루 하던 것이 오늘에 이르러 호로고루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임진강의 북쪽 절벽은

주상절리(마그마가 기둥 모양으로 굳어져 생긴 현무암)가 15~20m 높이로

발달해 있어서 백제군과 신라군이 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더라도 높은 주상절리를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고구려군은 이러한 주상절리를 방어에 십분 활용하는 한편 주상절리가 강물의 흐름에 의해

깍여나가 적군의 침입이 가능해진 곳에는 성을 쌓아 지킴으로써 임진강 북쪽의 넓은 지역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다.

 

 

 

 

 

"북을 치면 전진하고 종을 치면 후퇴한다."

호로고루에서 발견된 최초의 고구려 북이다.

 

 

 

성인 남성용 이동식 소변기 '호자'

고구려 장수는 찰갑(미늘갑옷)이라는 독특한 갑주를 입었는데,

입고 벗기가 불편하여 급하게 볼일을 보려면 독특한 형태로 고안된 소변기가 필요했다.

 

 

 

 

 

 

홍보관의 대형 유리를 통해 볼 수 있는 호로고루이다.

 

 

 

하늘에서 본 호로고루와 고구려 무장 보병

북한 만수대창작사의 인민예술가들이 역사적 고증을 거쳐 복원한 고구려 무장보병이다.

2002년 민화협이 남북협력사업을 목적으로 고구려 전시회를 개최할 때 우리나라에 들여온 전시품 중 하나이다.

 

 

 

 

고구려 기와의 내면

 

 

 

 

고구려 기와의 외면

기와의 외면에는 고구려 기와의 특징인 와틀의 모골혼이 관찰된다.

 

 

 

 

 

 

홍보관을 나오니 들녁에 보리가 가득 심어져 있고

밭두렁에는 꽃잔디가 심어져 있어 보는 눈이 즐겁다.

 

 

 

 

 

 

 

 

 

 

 

지금까지 수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성 내부에서

건물지와 수혈유구, 대규모 석축 집수지, 우물, 목책 등 다양한 유구와 연화문와당,

치미, 호자, 벼루 외에도 많은 양의 고구려 토기와 기와가 출토되었다.

이것은 화려한 기와건물과 상당히 높은 신분의 지휘관이 호로고루에 상주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찾아가는 곳

사적 제467호 연천 호로고루

주소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12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