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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여행] 청도 운문사, 운문사 처진소나무,원응국사비,청도여행,청도 문화재답사

들꽃(野花) 2017. 7. 15. 05:30

[절집여행] 청도 운문사, 운문사 처진소나무,원응국사비,청도여행,청도 문화재답사

 

청도 운문사

운문사는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입니다.

 

운문사 사적에 의하면

557년(진흥왕 18 년)에

한 신승(神僧)이 북대암 옆 금수동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도를 깨닫고
 도우(道友) 10여 인의 도움을 받아 7년 동안 5갑사를 건립하였는데,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현 대비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현 운문사)를 창건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운문사와 대비사 뿐이다

 

운문사는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어 승려교육과 경전 연구기관으로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운문사는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이『삼국유사』를 저술하였던 곳으로,

지금도 절 안에는 3층 석탑을 비롯하여 금당 앞 석등, 동호, 석조사천왕상, 원응국사비,

석조여래좌상, 동서 삼층석탑, 대웅보전(비로전), 비로자나삼신불회도,  대웅보전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 등의

많은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다.

 

 

고려 태조는 20년(937년)에 많은 전지를 내리고

운문선사라 사액하면서 운문사로 불리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운문사 안내도

 

 

호거산 운문사

1층의 문이 운문사의 정문이기도 한 범종루는

2층 누각으로, 법고(法鼓)·범종(梵鐘·大鐘)·목어(木魚)·운판(雲版)의 사물(四物)을 안치했다.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천연기념물 제180호

http://blog.daum.net/pjb1223/13351384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의 처진소나무이다.

처진소나무는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가지가 밑으로 늘어지는 점이 보통 소나무와 다른데

자연적으로 이 나무처럼 둥글게 자라는 나무는 매우 드물다.

 

운문사 처진소나무는

운문사의 앞뜰에서 자라고 있으며 높이는 약6m이고, 둘레는 3.5m이다.

나무의 나이는 500여년 정도로 추정된다.

 

어떤 고승이 시들어진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운문사에서는 매년 봄에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리 가장자리에 주고 있다.

 

 

 

 

청도 운문사 원응국사비

보물 제316호

http://blog.daum.net/pjb1223/13351378

 

 

 

 

원응국사비는

청도 운문사 3개의 비각 중 가운데 있는 비각안에 세워져 있는 비로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응국사(1051~1144)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비는

비받침, 비몸, 머릿돌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원응국사비는 받침돌과 머릿돌이 없어진 상태이다.

다만 세 쪽으로 잘린 비몸만 복원되어 있다.

세 부분으로 쪼개진 비신을 붙인 다음 철로 된 지지대로 고정하여 지탱시켜 놓았다.

비신의 높이는 230㎝이며 폭은 90㎝이다.

 

 

 

 

 

칠성각

독성(나반존자), 칠성, 산신 등 세 성현을 모신 전각이다.

삼성각은 우리나라 재래의 수(壽), 복(福), 재(財)의 삼신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전각이다.

독성이라는 불교적 성현 외에도 칠성·산신과 같은 전통신앙의 대상을 불교로 흡수하여

불교가 가진 원융의 성격을 드러내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통적인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 아니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 이름한다.

 

 

 

 

 

 

만세루

신라 원광국사가 초창하여 고려의 보양국사가 중창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105년 원응국사가 3차 중창할 때의 것이다.

사찰에서의 누각건물은 큰 법회시에 대웅전에 들어가지 못한 대중들이

대웅전을 향하여 법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만든 건물로,

운문사 만세루는 200여 평의 넓은 공간을 누각으로 조성하였다.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대중 스님들이 조석 예불을 모시는 주법당이다.

 

 

 

 

 

 

대웅보전 내부

상단에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불(三世佛)과 대세지, 문수, 보현, 관세음보살 등 사대(四大) 보살을 모셨으며,

좌측에는 신중탱화, 우측에는 53 선지식 탱화를 모셨다.

 

 

 

 

 

 

 

 

 

 

청도 운문사 동서삼층석탑

보물 제678호

http://blog.daum.net/pjb1223/13351381

 

 

 

 

 

운문사는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던 곳으로

대웅보전이란 현판을 달고 있는 비로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규모와 양식이 서로 같다.

 

석탑의

각 층의 기단에 기둥모양을 본떠 새기고,

특히 윗층 기단에는 8부중상을 새겨 놓았는데 모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몸돌은 보서리마다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처마 밑이 수평을 이루며,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각 부분들이 차례로 올려져 있는데 모두 본래의 것들이다.

 

탑의 높이는 591㎝이다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 제835호

http://blog.daum.net/pjb1223/13351382

 

 

신라시대에 세운 운문사는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는데

지금의 절은 조선 숙종 44년(1718)에 있었던 네 번째 보수 때의 것이다.

대웅보전도 이 때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운문사에는 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으나 통칭하여 비로전이라고 부른다.

 

현재의 대웅보전을 짓기 전,

운문사 신앙 공간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문화재청 등록 당시 “운문사 대웅보전”으로 등재되었기 때문에 옛 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모셨으며 좌측에는 신중탱화, 우측에는 삼장탱화를 봉안하였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료 참조)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

보물 제1817호

 

비로전(대웅보전) 후불벽 뒷면에 나란히 앉아 있는

관음보살과 달마대사를 그린 벽화이다.


후불벽 뒷벽에 관음보살도가 있는 예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 여수 흥국사 대웅전, 순천 동화사 대웅전, 구례 천은사 극락보전 등 10여점이 알려져 있으나

관음보살과 달마대사가 한 벽면에 나란히 표현된 것은 운문사가 유일하다.

 

 

 

 

 

청도 운문사 비로자나삼신불회도

보물 제1613호

http://blog.daum.net/pjb1223/13351383

 

운문사 대웅보전(비로전)에 봉안되어 있는 후불탱화이다.

삼신불회도는

법신 비로자나불과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의 설법 장면을 표현한 불화를 말한다.

화면은 크게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삼신불,

하단에는 협시보살과 사천왕

그리고 상단에는 설법을 들으려는 십대제자와 성중들이 표현되어 있다.

 

삼신불회도는 1755년 처일의 주도로 총 19명의 화승이 모여 제작한 불화이다.

18세기의 삼신불화는 비로자나와 석가, 노사나를 세 폭으로 나누어 그리는 3폭 형식이 유행하였지만

이 불화는 거대한 화폭에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 노사나불 등 삼신불을

중심으로 여러 권속들을 함께 그린 1폭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압전

운문사의 전신인 대작갑사의 유래를 알게 하는 유일한 건물인 작압전은

전면 측면이 모두 한 칸에 불과한 작은 건물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한 신승(神僧)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비로운 새 떼가 날아오른 것을 본 자리에 이르러 암자를 짓고 수행하여 큰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새를 보고 이른 터에는 무너진 석탑이 있어서,

무너져 있는 석조물로 다시 탑을 쌓으니 파편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는 것을 보고 좋은 징조로 여겼다고 한다.

그가 깨달음을 얻은 뒤 절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동쪽에 가슬갑사·남쪽에 천문갑사·서쪽에 대비갑사·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다섯 사찰을 두고 오갑사(五鴨寺)라고 하였다.

 

작압전은

신승이 발견한 석탑터에 지어진 전각으로,

나말려초의 보양국사가 전탑형식으로 초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현재의 목탑형식으로 재건되었다.

내부에는 보물 제 317호 석조여래좌상과 318호 석조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다.

 

 

 

 

청도 운문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7호

http://blog.daum.net/pjb1223/13351380

 

석조여래좌상은

청도 운문사의 작압전(鵲鴨殿) 에 모셔져 있는 높이 0.63m의 고려시대 불상이다.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완전한 형태의 불상이지만

호분이 두껍게 칠해져 세부표현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 불상은 겉온 안에 표현된 속옥, 전반적으로 투박해진 표현기법 등에서

9세기 불상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불상으로 보인다.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

보물 제318호

http://blog.daum.net/pjb1223/13351379

 

석조사천왕상은

청도 운문사 작업전(鵲鴨殿) 안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의

좌우에 각각 2기씩 모두 4개가 돌기둥처럼 배치되어 있다.

원래의 위치는 아니고,

이곳에 세워진 벽돌탑의 1층 탑신 몸돌 4면에 모셔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으며.

머리 뒷쪽으로 둥근 광채를 띤 채 악귀를 발로 밟고 있다.

 

 

 

 

관음전

1105년 원응국사가 중창한 것이라고 전하나, 건축 양식으로 볼 때 조선 초기 건물로 추정된다.

건물 안팎에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관세음보살의 공덕을 벽화로 표현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일체 중생들을 고통에서 건져 즐거움을 주겠노라 서원을 세운 대자대비의 상징으로,

운문사 관음전에는 1816년에 제작한 수월관음도가 후불탱화로,

1871년에 제작한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료 참조)

청도 운문사 금당 앞 석등

보물 제193호

 

운문사 금당 앞에 놓여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바닥돌과 하나로 이루어진 아래받침돌에는 여덟 장의 잎을 새긴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그 위에 놓인 가운데기둥에는 아무런 꾸밈이 없으며, 윗받침돌에는 각 면마다 연꽃이 새겨져 있다.

화사석에는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경쾌한 모습이며, 꼭대기에는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있다.
각 부분이 잘 균형을 이룬 우아한 모습의 통일신라시대 석등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료참조)

 

청도 운문사 동호

보물 제208호

 

운문사 동호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항아리 모양의 불교 용기로, ‘감로준甘露樽’이라고도 부른다. 

용도는 감로수를 담아 놓는 의식용 항아리일 가능성이 높으며, 높이는 55㎝, 입 지름은 19.5㎝, 몸통 지름은 31㎝이다.

현재 고려시대 불교 용기로서는 향로, 정병 외에

용도나 형태에 있어 유일한 예로 뚜껑의 높이가 전체 높이에 비해 다소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나, 

안정된 비례감과 명문을 통해 고려시대 불교유물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찾아가는 곳

청도 운문사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264번지